작업노트, 2024




무겁게 피어오르는 연기,
날카로운 깃털,
가시 돋친 매끈한 나무,
날지 않는 천사들.

어제 아름답다고 생각한 것이 오늘 그 어떤 것보다 공포스럽게 다가온 날이 있다. 언젠가부터 지나치게 평화 로운 것을 보고 있으면 어딘가 모를 위태로움이 느껴지곤 했다. 이제껏 자연스레 상상했던 장면들이 실은 무 의식중에 학습된 것임을 깨달은 순간이 있다. 나는 이러한 경험들에 예민하게 반응했고, 그러한 예민함은 나의 작업 전반에 흐르는 일관된 감각이 되었다.

오래전부터 아름답고 낭만적인 것으로 여겨져 왔던 것이 한순간에 뒤바뀔 때에 위반의 매력을 느낀다. 그렇기에 암묵적으로 통용되어 굳어진 것에 가느다란 금을 내고 싶었다. 그리고 그 가느다란 금은 은연중에 불안을 느끼게 한다고 생각한다. 이미 깨져버린 화병이 아닌 언제 깨질지 모르는 금이 간 화병처럼 위태로운 가능성을 머금은 아름다운 화면을 만들고자 한다. 위반과 모순의 알레고리로서 나는 자주 ‘천사’나 ‘말’과 같이 연상되는 이미지가 강한 재료들을 빌려왔다. 그들의 껍데기는 내 허구의 세상에서 정해진 레시피 없이 빚어진다. 예컨대 천사는 ‘선’의 상징으로 흔히 인간의 형상에 날개가 달린 모습으로 그려져 왔다. 그러나 그 날개가 그들을 인간의 잣대에서 벗어나게 하기도 갇히게 만들기도 한다. ‘자유’를 상징하는 날개가 그다지 ‘자유’롭지 못한 점은 내가 상징의 소재를 가져와 흉내 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그런 유희들이 어디까지나 허구이며 이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 환상이라는 것을 계속해서 주지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물과 호분(조개껍질 가루로 만든 전통안료)을 사용해 물감의 농도와 채도를 조절하여 얇은 광목천에 부드럽게 스미는 기법은 아무리 여러 번 겹쳐 올려도 그 두께가 유지된다. 그렇게 만든 안정감있는 환영은 때때로 구겨지고 흘러내리고 그러다 실오라기기와 함께 해체되며 보잘것 없는 천의 연약함에 무너진다. 어쩌면 그러한 물성을 전면에 드러내는 것이 한껏 몰입시켜 놓은 평평한 환상에 위태로운 입체감을 보태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최근의 그림들에선 더욱이 존재할 수 없는 것들을 부단히 존재하게 한다. 본 적 없는 것을 본 것처럼 그려내거나 사물의 본래의 속성에 반하게 표현하는 모순적인 행위에서 나는 창조자의 놀음과도 같은 쾌감을 느낀다. 과거도 미래도 아닌 시공간 속에서 누구보다 가까이서 대상을 묘사하며, 관념적인 표현과 현실적인 표현이 한데 뒤섞으니 점점 더 묘한 기시감이 생긴다. 미시감과 기시감의 사이, 쾌와 불쾌의 사이, 낭만과 공포의 사이. 상반되는 것들은 서로 등을 대고 있는, 그러니 오히려 누구보다 가까운, 그러나 한 끗 차이로 갈라져 멀어져 버린 것이 아닐까. 나는 계속해서 그 간극을 예민하게 감각하며, 내가 만든 세계를 집요하게 관찰한다.







김영현